※ 딱 봐도 대놓고 연애질 쩌는데 당사자들만 연애 아니라고 하는 본격 유사연애글

    아슬아슬한 느낌이고 싶었건만 욕망이 폭발하여 대놓고 연애질하게 만든 고통ㅜㅜ

※ 캐릭터들에게서 의외의 면모를 보신다면 그 부분은 황혼의 물가 새벽의 하늘에서 나왔던 새로운 면모(?)가 살짝..

    ...이 아니고 많이 과장되어 표현되었다 보시면 됩니다.. 당찬 요코와 떫은 표정 싫은 티 팩팩 잘도 내는 쇼류.. 즉 캐붕주의!!

글이 중구난방 한없이 가볍습니다. 이게 제일 주의해야 할 부분. 

    왜냐면 제가 뇌를 하나도 이용하지 않고 정말 가볍게 쓰고 싶었거든요^q^ 심지어는 오타까지 나올 지도 모름^^...






  요코는 현영궁의 금문을 넘어 후궁 쪽으로 들어섰다. 금문은 나라의 왕과 그 재보가 아닌 이상 넘을 수 없는 것이 세계 어느 나라에나 적용되는 통상적인 규칙이었지만 그녀는 금문을 허락받은 예외 인물 중 하나였다. 오히려 오문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 받았다. 자주 드나드는데 오문으로 정식 절차를 밟아 들어오게 되면 관들이 예의니 뭐니 따져 귀찮아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남쪽에 있는 그녀의 나라에서는 남쪽으로 난 노문을 이용해 외궁으로 드는 것이 가장 편했지만 그의 만류 덕분에 늘 관궁산을 끼고 돌아 금문으로 들어서야만 했다. 특권은 차별과 함께 주어져 도리어 불편하고 귀찮을 정도다

  요코는 추우를 병졸에게 맡기고 규문을 넘었다. 궁의 주인이 황해에서 잡아다 준 일종의 기념품이다. 심심해서 황해를 놀러갔는데 운 좋게 마주쳐서. 너 아직 기수 없지 않았나? 그 말과 함께 받은 추우는 그녀의 하나뿐인 기수가 되었다.


  “연왕께서는?”

  “조의를 마치고 정침에 계십니다.”

  “당연하지만 이 시간이라 해도 내전에 계실 리는 없겠지. 하지만 후궁도 아니고 정침?”

  “조당에 나간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휙 받아치는 목소리에 돌아보자 금빛 찬란한 머리칼을 늘어뜨린 소년이 왔어? 하고 묻는다.


  “말씀하시는 타이호야말로 인중전에 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그래, 요코. 이미 알 거 다 아는 사람들끼리.”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리자 소년은 가까이 다가왔다. 그만 물러가 볼 일 봐도 좋다는 듯 로쿠타가 손을 휘젓자 모우센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물러났다. 그녀는 로쿠타와 함께 정침을 향해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 아마 그 녀석 어제 관궁에서 새벽까지 술 퍼마시고 와서 바로 조의에 들어갔으니까 지금 장난 아닐걸? 각오하는 게 좋아.”

  “나더러 네 주인의 시중을 들라는 거야?”

  “,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는 하다. 숙취로 퍼진 소년의 주인은 어지간해서는 측근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현영궁에서 그를 말릴 수 있는 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요코는 쓴 웃음과 함께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모처럼 놀러왔는데 도리어 부려먹다니.”

  “부탁할게. , 그럼 나도 밀린 일이 있어서.”


  밀린 일이 있다면서 왜 인중전 쪽이 아니라 금문으로 가는 걸까. 그녀는 이내 타마를 풀어줘, 하는 말과 함께 신나게 규문을 향해 달려 내려가는 로쿠타를 쳐다보았다. 하기는. 이 주종이 성실하게 정무를 집행하는 장면을 보면 실도를 의심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호위도, 안내도 없이 홀로 휘적휘적 걸어 정침에 이르자 여관들은 놀라지도 않고 평복했다. 손님이되 손님이 아닌 그녀의 방문은 익숙했다. 어떤 손님이든 내궁에 이를 수는 없다. 하물며 왕의 주된 생활공간인 정침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경왕만큼은 다르다. 이미 손님이라기보다는……. 그들은 소녀 왕이 웃음으로 예를 받아주고 당실 내로 들어서는 것을 슬쩍 쳐다보았다.


  당실 내는 적막으로 젖어 있다. 아직 밤이 녹고 새벽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 같이 고요하게 가라앉아있다. 그것을 헤치고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서 내부를 휙 둘러보고는 역시나 싶은 한숨을 내쉰다. 엔키의 말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반쯤 풀어져 내린 흐트러진 휘장을 한 번, 두 번 손으로 걷어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자그마한 방 같을 정도로 커다란 침대 위로는 조의에 참여한 의관 그대로 뻗어버린 연이 보였다. 그녀는 침대 옆에 털썩 주저앉아 이 사람을 어떻게 깨워야 하나, 하는 눈으로 복잡하게 내려다보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기는 하지만 그는 꽤 강적이니 솔직히 별 수 없다. 요코는 신발을 벗고 다가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신발을 벗고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면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침대는 넓었다.


  “쇼류, 일어나. 나 왔어.”


  미동도 않는다. 어디 누가 이기나 싶어 계속 말을 걸며 어깨를 흔들자 어느 순간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귀찮은 것을 쫓아내듯 손사래를 친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요코는 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억지로 잡아당겨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진심으로 귀찮다는 듯 금방이라도 짜증을 낼 법한 표정을 짓고 억지로 끌려 일어났다. 간신히 눈을 뜨자 보이는 붉은 색의 향연에 그는 졌다는 듯 신음했다.


  “언제 왔어.”

  “방금. 그래도 조의는 나갔다면서?”

  “기특하지 않아?”

  “퍽이나.”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정작 당한 상대는 별로 기분 상한 기색도 없다. 다만 일어난 그대로 앞으로 허리를 푹 고꾸라뜨리더니 그녀의 어깨 위로 고개를 푹 파묻었다. 무겁게 기운을 쭉 빼고 기대듯 안겨버리고 마는 커다란 몸을 지탱하듯 붙잡는다. 잠이 덜 깬 것이다.


  “일어나. 그만 일어나란 말이야.”

  “내버려둬. 로쿠타랑 놀아, 오늘은.”

  “로쿠타 관궁에 놀러갔어.”

  “재보라는 녀석이 일은 안하고.”

  “왕씩이나 되는 분께서 새벽까지 술 마시고 와서 이러고 있으니 할 말은 없을 텐데.”


  그는 귀찮다는 듯 물었다.


  “누구한테 들었어. 이탄이냐, 슈코우냐, 세이쇼냐. 누가 벌써 너한테 고자질한 건데.”

  “한 사람 빼먹고 있지 않아?”

  “그 녀석은 애초에 사람이 아니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떫은 목소리로 답한다. 자기는 놀러가면서 정작 제 주인을 이르고 가다니 배신자 녀석 같으니라고.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은 딱따구리가 쪼는 것 같은 편두통에 현기증, 속은 메스껍고 울렁거려 영 상태가 좋지를 못하다. 조의만 없었어도 딱 좋았을 것을. 그는 의장의 앞섶을 거칠게 헤쳐 손을 집어넣고는 꽉 막힌 것 같은 단단한 명치를 손끝으로 가늠했다. 제대로 속병이 난 것이 분명하다. 물론 눈앞에 빈객이자 여자인 이웃의 왕도 있는 것 같지만 별로 신경은 쓰이지 않는다. 그보다 더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으니 이 정도야 면역이 되었겠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할 일 많은 거 아니야?”

  “없어.”

  “이탄에게 물어봐야겠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퉁명스럽게 툴툴대는 목소리에 원망이 한껏 묻어난다. 요코는 키득키득 웃으며 잠에서 깨지 않으려 애쓰는 그를 으스러뜨릴 정도로 세게 끌어안았다. , 하고 막힌 한숨을 지른 그가 놓아달라는 듯 어깨를 두드려도 내키는 만큼 한껏 끌어안은 뒤에서야 놓아준다. 이윽고 얼굴을 마주한 그는 어느 정도 잠은 달아난 모양인지 눈을 뜨기는 했지만 두 배는 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표정하지 마. 귀여워서 그랬어.”

  “귀여워? 누가? 내가?”

  “남자는 귀여우면 안 되나? 그거 편견이야.”

  “그것뿐만이 아니야. 내가 너보다 적어도 오백 년은 더 살았잖아.”

  “오히려 나보다 오백 년은 어릴 것 같은 제멋대로의 어리광쟁이지만 말이야.”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 별로 이기고 지는 걸 생각하며 대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듣고 넘기기는 싫은 말이니 대꾸해줄 뿐이다. 요코는 가볍게 웃는 얼굴로 침대 밖을 향해 다리를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깨가 뒤로 우악스러울 정도로 확 잡아 채이며 침대 위로 상체가 벌러덩 드러누워졌다.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고 내려다보는 쇼류. 요코는 아야야, 하고 간신히 뒷머리를 붙잡았다. 갑자기 침대에 넘어지며 뒤통수를 비녀가 둔탁하게 찔러온 덕분이었다.


  “이래도 귀여워?”

  “아직도 그 소리야?”

  “위압적이지 않아? 남자다움이 팍팍 느껴지지.”

  “글쎄? 전혀. 지금도 이렇게 힘으로 떼를 쓰는걸.”


  그리고 그 순간 당실의 문이 달칵 열리는 소리를 내었다. 두 사람은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숙취로 불쾌감에 젖은 쇼류와 뒤통수를 부여잡고 살살 문지르면서도 비아냥대고 있는 요코였다. 그리고 인기척은 모습을 드러내며 두 사람을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주상, 설마 아직도…….”


  그리고는 놀란 눈으로 그들을 쳐다본다. 쇼류는 마침 잘 왔다는 듯 바로 그를 불렀다.


  “슈코우, 너도 도와. 내 측근이잖아.”

  “안됐지만 슈코우가 당신을 도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나랑 같은 생각일걸?”


  슈코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또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짐작하는 것은 아마 그다지 어렵지 않겠지만 짐작하려고 마음먹는 것조차 의미 없는 일이다. 그는 침상으로 다가가 쇼류를 저지했다. 넌 왜 남의 나라 왕 역성을 드는 거냐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을 싹 무시하고는 이내 몸을 일으키는 그녀에게 예를 표했다.


  “오늘도 주상의 기침을 도와주셨군요. 감사드립니다.”

  “쇼류를 깨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모양이니까.”


  그리고는 웃는다. 슈코우는 쓴 웃음을 지었다. 사실 술까지 마셔 완전히 뻗어버린 주상을 지지부진한 실랑이 없이 거의 바로 일으켜놓는 이는 현영궁 내에 없습니다, 하고 고하는 것도 창피한 것이다. 요코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그를 쳐다보았다.


  “술 냄새.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적당히 마셨어.”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밥도 안 먹었겠네.”

  “그야.”


  요코는 거무죽죽한 안색을 보고는 복잡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슈코우를 향해 말했다.


  “간단하고 부드럽게 넘길 수 있을 만한 것 좀 부탁해 주겠어? 자업자득이지만 불쌍하잖아.”

 



  “속 쓰려서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

  “안 먹으면 몸 상해.”

  “죽지 않으니까 상관없잖아.”

  “진짜 말 많다니까.”


  일침을 가하며 수저를 억지로 손에 들려놓는다. 그는 억지로 타락죽에 숟가락을 푹 꽂으며 오만 인상을 썼다. 안 먹으면 물론 숙취가 더디게 해소되겠지만 먹고 나면 비록 잠깐 동안이라 해도 텁텁한 입에 메스꺼워지는 속까지. 견딜 수 없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별로 견디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앉아 빨리 먹으라며 재촉하니 어쩔 수 없다. 먹는 수밖에. 그는 성의 없이 퍼 올린 수저를 입에 가져가 우물거렸다.


  “그것만 먹지 말고. 안 그래도 입맛 없을 텐데 그것만 먹어서 몇 수저나 넘어가겠어?”

  “역시 안 먹을래. 텁텁해.”

  “그러니까 술 적당히 마시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나를 이렇게 잔소리꾼으로 만들어야 성에 차겠어? 그녀는 반찬을 집어 그의 죽 그릇 위로 먹기 좋게 덜어 얹어놓았다. 무조건 그건 먹는 거야. 기세 좋은 협박에 쇼류는 한숨하며 꾸역꾸역 늦은 아침식사를 해치웠다. 그래도 얌전히 그녀의 말에 따라주고 나면 나름 주어지는 상이 있다. 대체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숙취에 굉장히 잘 듣는 음료를 직접 타다 주는 것이었다.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타다 주는 음료를 망설임 없이 입에 들이부었다.


  “만드는 방법 좀 어선방에 일러주고 가라니까.”

  “그랬다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고주망태가 될 것 아냐.”


  예상하건대 아마 틀린 말은 아닐 터다. 쇼류는 슬그머니 침묵하다 이내 툴툴댔다. 마누라도 아니면서 잔소리는 왜 이리도 심한지. 오백 살이나 어린 여자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다니 꼴이 말이 아니야. 대놓고 들으라는 듯 투덜대지만 능숙하게 무시하는 요코는 역시 강적이었다.


  “그러니까 한참 어린 여자애한테 휘둘리지 않게 잘 하면 되지. 안 그래요, 쇼류?”

  “한때 네가 나를 명군이라며 떠받들던 때가 있었던 거 기억 안나?”

  “글쎄. 너무 오래전이라.”


  천연덕스럽게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는 입을 비죽 내밀고 불쾌한 기색을 있는 대로 드러냈다.


  “오후 정무는?”

  “내가 쇼류야? 오늘은 별로 일이 없으니 바로 온 거지. 그래서 당신은?”

  “없을 예정. 오늘은 휴업이야.”


  그렇겠지. 요코는 쓴 웃음을 짓다 도리어 잘 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랑 놀아주지 않을래?”

  “오늘은 휴업이라니까. 지금이라도 바로 로쿠타를 따라가.”


  요코는 기가 차 그를 쳐다보았다. 나와 노는 게 일의 연장선에 놓일 만한 중노동이야? 어이가 없다는 듯 물어오는 목소리조차 무시하고 그는 다시 휘장을 걷으며 침대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사실 그녀가 준 음료를 마시며 불쾌했던 숙취 기운이 조금씩 가시는 것 같기도 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귀찮았다. 뼈마디까지 뻑뻑한 피로감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낫지 않을 성질의 것이었다. 오늘 정도는 하루 종일 푹 자두지 않으면 내일까지도 지지부진 이 상태를 끌고 갈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팔을 붙잡고 요코가 힘을 주어 매달렸다.


  “당신이 오라고 해놓고 이러기야? 오라고 말한 사람이 책임은 져줘야 하잖아.”


 아차. 내가 오라고 했었나. 쇼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놀아줄 생각은 없다만. 쇼류는 떨어지지 않는 그녀를 매단 채 거의 힘으로 침대를 향해 걸었다. 아무리 성인에 가까운 소녀 하나가 온힘을 다해 매달려 있다 해도 가늘고 여려 힘으로 못이길 상대는 아니다. 그는 칭얼대는 그녀의 팔을 잡아 확 끌어당기며 침대로 함께 쓰러졌다.


  “아앗!”


  불시에 몸이 기울어 저도 모르게 눈을 꽉 감으며 소리친다. 그는 저절로 움츠러드는 요코를 팔 안으로 당겨 안은 채 침대로 뛰어들었다. 단단한 그의 몸과 푹신한 이불에 둘러싸여 작게 신음하니 이불 속에 반쯤 고개를 파묻은 그가 피식 웃었다. 얼굴을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깜짝 놀라 움츠러들며 소리를 지른 것에 대놓고 비웃은 것이다.


  “자자. 낮잠은 확실히 책임져주지.”

  “그거 말고!”


  어딜 적당히 넘어가려고. 낮잠을 자고 싶었다면 굳이 시간을 들여 현영궁까지 놀러올 필요는 없었다. 요코는 침대 위로 푹 퍼진 그를 온힘을 다해 밀어내고 간신히 제 몸을 일으켰다. 제발 잠 좀 자게 해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부탁하는 것도 흘려듣듯 무시하고 엎드려있던 그의 어깨를 돌려 다시 일으킨다.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요코, 정말. 이러다 나 실도할 지도 몰라.”

  “쇼류 때문에 내가 먼저 할 것 같으니까 일어나. 오늘은 일찍 재워줄게.”

  “……언제.”

  “……. 오늘 저녁 먹으면 바로 금파궁에 돌아갈 거니까. 저녁 먹고 나면 자유 시간 아닐까?”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답해주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미간에 주름을 잡고 그녀를 올려다본다. 자꾸 무겁게 감겨버리고 마는 눈을 뜨려니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엎드려있는 채 두 팔꿈치로만 상체를 억지로 일으켰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 특혜면 오후까지 봉사해줄만 하지 않아? 하고 묻는 얼굴이 그를 내려다본다.


  “이제 왔는데 겨우 밥 두 끼 먹고 간단 말이야? 잊고 계신가본데 운해로 달려도 하루가 꼬박 걸려, 그거 알고 있어?”

  “그렇기는 한데, 로쿠타도 쇼류도 공사다망하신 것 같고. 그럴 바에야 굳이 잡무를 쌓아놓는 것보다 환궁하는 게 낫지.”


  어깨를 으쓱하고는 미련 없이 웃는다. 그는 작게 목울대로 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리고 이내 졌다는 듯 비척비척 일어났다.


  “내가 졌다. 있을 만큼 있다 가.”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어깨를 으쓱이고는 단숨에 몸을 일으켰다.


  “됐어. 생각해보니 한가하게 놀고 있을 틈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로쿠타나 따라갈 걸 그랬나봐. 이렇게 피곤해할 줄은 몰랐어.”


  말과 함께 가볍게 웃음 띤 얼굴로 침대를 벗어난다. 그는 한숨과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가느다란 허리를 휘감아 당겼다.


  “잠깐만!”


  두 번은 안 넘어간다는 듯 버티려 했지만 남자의 힘은 완고하다. 결국은 휘청하고 무릎이 꺾이며 뒤로 주저앉았다. 요코는 제 허리를 휘감은 그의 한 팔을 떼어내기 위해 두 손으로 붙잡았다. 하지만 역시나 감겨있는 팔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당장 간다고는 안했잖아, 그만 놔줘.”

  “며칠 있다가 간다고 약속해. 그럼 놓아주지.”

  “언제는 잘 테니 내버려두라더니?”

  “생각이 바꼈다.”


  나 참. 어린 애 심술도 아니고. 요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녀를 제 무릎에 주저앉힌 그대로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 위로 고개를 푹 수그렸다. 아직 잠도 못 깨면서. 그녀는 허리를 돌려 지척에서 그와 마주보고는 딱 잘라 말했다.


  “알았어. 그러니 놔줘.”

  “주상, 타이호께서 알현을 청하고 계십니다.”


  그 순간, 침대를 둘러싼 휘장 너머로 여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주상과 빈객이 서로 침대 위에서 바짝 붙어있는 상황에도 전혀 놀람이 없었다. 꽤나 익숙한 광경이라는 뜻이다. 쇼류는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했다.


  “참 나. 언제는 격식 차려 들어왔다고. 들여보내.”


  긍정하는 대답과 함께 여관은 물러난다. 그리고 곧 어린 소년이 당실 내로 들어왔다. 요코는 그 와중에도 그의 팔을 붙잡고 홀로 실랑이를 벌였다. 불편하니까 좀 놓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요지부동이다. 도리어 저를 향해 다시 돌아서 노려보는 그녀의 어깨로 깊숙이 고개를 떨어뜨린다. 눈이 실 정도로 아프다. 피곤해 죽겠는데 잘 수는 없으니 자꾸 기대고 싶어졌다. 그리고 로쿠타가 들어와 머잖아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제 무릎 위로 요코를 끌어안고 고개를 푹 파묻은 쇼류와 귀찮다며 그 어깨를 밀어내는 요코를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최대한 돌려 시선의 끝으로 소년을 보았다.


  “로쿠타, 다시 돌아온 거야? 잘 됐다. 나 좀 데려가.”


  소년은 저도 모르게 익숙해지고 있던 광경을 감흥 없이 보다 아차 싶어 얼른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쇼류, 그 모습을 설마 여관에게 보인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뭐.”

  “사람들은 남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거 알면서도 그래. 둘 다 좀 조신해 보라고. 특히 요코는 즉위 초 백년은 안 그러더니 점점 쇼류한테 물드는 것 같단 말이야.”


  요코는 뜨끔해 몸을 움츠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쇼류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내가 뭐 어때서. 그는 허리를 수그려 그녀의 어깨 위로 턱을 얹은 채 제 반신을 향해 귀찮은 시선을 던졌다. 어차피 일어나기로 했으면 혼자 앉는 법도 좀 배워보지 그래? 그녀가 귓가로 부루퉁하게 말을 건네는 것이 느껴졌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후우칸이 아닌 쇼류로서, 이성에 대한 책임이나 감정도 없이 편할 수 있는 여자는 그녀가 유일했다.


  “남들은 너희 혼인만 안했지 이미 부부인 줄 알걸?”

  “어차피 요코하고 나만 아니면 되는 건데 뭘 그리 수선 떨어.”

  “네 체통이야 그렇다 치고 요코 체면은?”

  “난 뭐. 익숙해져서 그냥 그럭저럭.”


  요코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쇼류를 향해 말장난을 쳤다.


  “그런데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철부지 아빠와 조숙한 효녀 정도가 적당하지 않아? 사실 완전 할아버지니까 이것도 많이 봐준 거지만.”

  “요코!”

  “미안.”


  로쿠타의 일갈에 요코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소년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 아이가 되어버리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된 게 자신보다 더하다. 소년은 말을 들어먹지 못하는 주인 대신 소녀 쪽을 공략하기로 했다.


  “요코, 너까지 그러기야? 좀 더 제대로 말해줘? 관들은 너희 이미 갈 데까지 간 연인 사이인 줄 안다고.”

  “나랑? 쇼류가? 가긴 어딜 가?”


  그녀는 표정을 굉장히 기묘하게 일그러뜨리며 어이가 없다는 듯 그와 자신을 향해 번갈아 손가락질을 했다. 그리고는 정말 불쾌하다는 듯 대꾸했다.


  “설마. 쇼류는 내 취향 전혀 아닌걸.”

  “그거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데? 내가 관궁에만 일단 내려가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쇼류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면 곤란해.”


  요코는 딱 잘라 말하고는 팔을 뒤로 둘러 그의 팔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가 풀어줄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몸이 풀려날 리 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세게 당겨 안는 그에게 끌려갔다.


  “기대지 마!”

  “그건 싫은데.”


  그녀는 한껏 꺾인 허리를 그의 팔에 의지한 채 힘에 부쳐 떨었다. 그의 상반신이 힘을 빼고 그녀의 몸 위에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진짜 힘들단 말이야, 애처럼 굴지 마! 결국 짜증을 부리는 목소리에도 그는 놓지 않는다. 결국 이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라 그의 두 팔을 끌어안듯 붙잡고는 로쿠타를 돌아보았다.


  “사령 좀 불러줘, 이 남자 좀 확 때려눕히게.”

  “놀아달라며?”

  “쇼류, 장난 좀 그만 쳐.”


  정말 요코 말대로 사령이라도 부르기 전에. 그 말을 삼키며 짧게 주의를 주지만 쇼류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장난이라고 누가 그래?”


  그리고는 허리를 들더니 요코의 옷고름을 붙잡았다.


  “여기서부터 미성년자 관람불가일 텐데 너 거기 계속 서있을 건가?”


  장난치는 줄 알았건만 쇼류는 그대로 손에 힘을 주어 잡아당긴다. 단정하게 마감되어 있던 매듭이 그의 손에 이끌려 부드럽게 풀어지는 것에 로쿠타는 경악했다. 요코 역시 놀란 눈으로 그의 손에 당겨져 풀어지는 매듭을 쳐다보았다. 소년이 넋이 나가 턱을 벌리고 쳐다보는 것은 당연했다. 그 정도로 기가 막힌 장면이었으니. 그리고 그 순간, 요코가 갑자기 소리 내어 웃었다. 정작 뒤통수를 맞고 희롱당해 정조의 위기를 느껴야 할 당사자가 우습다는 듯 소리 내어 웃으니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녀는 한참을 웃어 허리가 아픈지 등허리를 가볍게 두드리면서도 여전히 웃음기가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쇼류, 쇼류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데 말이야. 그녀는 운을 떼었다.

 

  “로쿠타를 미성년이라고 할 것 같으면 나도 미성년잔데?”

  “아차.”


  그러고 보니. 쇼류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그녀를 산뜻이 놓아주었다. 요코는 바보네, 하고 낄낄 웃으며 일어나더니 그가 풀었던 옷고름의 매듭을 완전히 풀고 상의를 벗어 탁자 위로 걸쳐놓았다.


  “그래서 관궁에 같이 내려가는 거지?”

  “아까 이미 졌다고 했잖아.”


  다시금 패배 선언을 하는 그 역시도 요대를 풀고 있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당실 벽 쪽에 붙은 가구들 중 궤짝으로 다가가 평민 남성과 여성의 옷을 한 벌씩 꺼냈다. 그리고 여성의 옷은 탁자 위에 내려놓고 남성의 옷을 침대 앞에 서 포까지 이미 벗고 있는 그에게 건넸다. 로쿠타는 어이가 없어 그 광경을 넋 놓고 쳐다보았다.


  “휘장 내려줄 테니까 옷 갈아입고 나와.”

  “보통 반대 아니야?”


  쇼류는 황당하다는 듯 휘장을 내려주고 나가는 요코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보통은 여자들이 안, 남자들이 밖에서 갈아입잖아. 동의를 구하는 눈으로 묻는 그에게 소년은 떫은 웃음을 지어주었다. 애초에 너희들이 노는 모습에 상식이란 건 없었어

  그는 툴툴대며 왕의 의장을 벗고 평민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바깥쪽 역시 마찬가지인 듯 천이 스치고 패옥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갖춰 입는 옷이 많다 보니 요코 쪽이 더디게 옷을 갈아입었다


  두 사람은 하계로 곧잘 놀러 다니고는 해서 각자의 정침에 꼭 서로를 위한 평민 복장이 한두 벌씩은 장만되어 있었다. 그러니 한 방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괜히 내외한다며 평민 옷을 들고 방문 밖으로 나섰다가 관에게 걸리기라도 한다면. 요코는 쇼류의 신하들에게 함께 혼나며 태강을 필사하는 벌을 받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다 갈아입었어? 나 들어가도 돼?”

  “네가 더 늦었다만.”

  “그야 난 여자니까.”


  그래, 너 여자 맞아서 지금 이 상황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그는 휘장을 걷고 들어오는 평민 유군 차림의 그녀와 마주했다. 쇼류와 요코는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비단옷 한 벌을 팔에 걸치고 있었다. 금문을 벗어나기 직전까지 훌륭히 몸을 숨겨줄 관복이다. 그들은 관복을 평민의 옷차림 위로 걸치고는 로쿠타를 쳐다보았다.


  “로쿠타도 갈 거지?”

  “이봐, 요코.”

  “안 갈 건가?”

  “몰론 가. 가긴 하는데.”


  로쿠타는 물어오는 요코와 쇼류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당연히 인중전에 눌어붙어 일이나 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두 사람은 씩 웃고는 이내 당실 문으로 다가갔다. 로쿠타는 두 사람이 문을 열기 전 잊혀져가던 물음을 다시 주었다.


  “너희 이대로도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


  가타부타 핵심어가 빠진 말에 쇼류와 요코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잠시 의아한 눈은 그대로 소년을 향했다.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별 문제 있냐는 듯 말했다. 의미를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굳이 물을 필요 있냐는 뜻이었다.


  “.”

  “우리만 아니면.”

  “됐지.”

  “.”


  두 사람은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뭐가 문제가 되냐는 듯 다시 로쿠타를 쳐다보았다. 으이구, 정말.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진심 섞인 연애나 혼인 같은 것과는 담 쌓을 수밖에 없는 신분이니 유사연애를 하며 즐기는 건 알겠다. 그럴 의도가 없다 해도 오랜 세월 서로 마음이 맞으니 연인이나 배우자에게나 할 법한 언행을 많이 보이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적당해야지. 이렇게까지 말을 해줘도 모르니 그냥 입 다무는 수밖에. 어차피 둘 다 괜찮다고 하니까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설령 저러다 진심이 되어버린다 해도 상관없다. 의외로 나쁘지 않은 조합이니까. 그 때쯤 가면 신료들조차 그러려니 해버릴 테니. 아니, 벌써 그러려니 하고 있다. 소년은 긴장된 시선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쳐다보고는 씩 웃으며 따라나섰다.


저번에 올린 게 좀 무거웠으니까 이번엔 한없이 가볍게



... 이거 언제 갈아엎어도 이상하지 않은 글이네요.. 

이걸 글감으로 차라리 쪼개서 다른 단편을 써야겠다 맘먹을 날이 올 수도 있고.. 귀찮으면 아닐 수도 있겠다...^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