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진짜 티스토리 얼마만에 방문해본 건지😅
역시 마음의 고향이라 그런지 이제 덕후색 많이 죽었어도
새삼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니 근데 카카오가 여기까지 점령했을 줄이얔ㅋㅋㅋㅋㅋ
나 너무 화나....
내 덕계와 일상계를 필사적으로 나누려 노력했건만
카카오 얘네 진짜 쓸데없는 일 잘함😇
일코가 불가능해진다고.. 내 일코...
결국 어쩔 수 없이 카카오계정 연동해벌임...ㅠㅠ
여하튼!

그간 격조했습니다.
주인도 현생 사느라 정신 없어서 수년을 외면했던 곳인데
마이너한 십이국기를 파는 마이너한 블로그에
귀한 발걸음해주시고 또 소중한 발자국 남겨주신 분이 계셔서
모르는 새 모르는 분께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었구나 싶으니
너무 부끄럽고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덕질은 계속 하고있었습니다.
다만 새로운 게 아니고 십이국기만 계속 파고 있었어요.
나이 먹으니 새로운 것 파는 게 쉽지 않아요..
사실 그런 여유도 없었긴 했지만
또 십이국기만큼 매력적인 작품이 또 없었지요.
그런데 연애하고 결혼하고 임신하고 육아하고 그 와중에 일을 하니
워킹맘은 덕질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어요.
언젠간 다듬어 올려야지 하고 찌끄렸던 최소 5년 전의 글들만
남편 몰래 다시 파고 파고 또 파면서 홀로 죽어라 덕질했지요!
원래 덕질은 숨어서 음침히 몰래 음지에서 하는 게 제맛🤫
더욱이 제 덕질은 아시다시피
쇼류요코에 대한 욕망에 더없이 충실하기에ㅋㅋㅋㅋㅋㅋ🤗🤗

수년만에 들어와보니 이렇게 적게나마 소중한 소통 나누고 있었던 게
너무너무 기쁘고 설레서 일도 관뒀겠다
애기 없는 시간대에 다시 덕질해보고픈데
이제 제게 컴퓨터가 없다는 슬픈 현실..ㅜㅜ
더욱이 그땐 끄앙 나름 재미지다 하고 찌끄렸던 글들이
지금 보니 왜 이리도 민망할 만큼 조악하고 유치하고 장황하기만 할까요.
또 이때보다 제 어휘력이 너무 줄어든 걸 깨닳아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부끄러워서 도망가려다가
또 누군가는 반가운 발걸음해주시려나 싶어 이렇게 글 두고 갑니다.
타임캡슐을 묻는 것처럼 두근거리네요!ㅋㅋ

덕토크라도 같이 많이 나눴으면 좋겠어요.
십이국기는 작품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서로의 경사도 직접 참여해 축하했던 만큼
소중한 지인을 만나게 해줬던 창구이기도 해서
또 그런 운 좋은 경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됩니다❤
트위터 계정 kuz126이니 만약 덕토크라도 괜찮으시다면 찔러주세요!
물론 트위터도 거의 다 죽어있지만 그래도 계정은 열려있으니까요..!ㅋㅋㅋ

사족.
오오후리도 검은방도 여전히 아끼고 좋아하지만
십여년 전부터 일관되게 십이국기 뿐이라
후리나 검방을 통해 본 블로그를 접하신 분들께는
감사하고 또 죄송한 마음입니다ㅠㅠ
그치만 덕토크는 좋아합니다!ㅋㅋ
연성까지 갈 에너지가 부족할 뿐..
아니 근데 애초에 놋북이 없어서
십이국기조차 연성을 할 수 없다는 게 함정ㅠㅠ

아이고...

분발하자!!!!!

6월 안으로, 라고 해도 말일까지 가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여튼 그 안으로 뭐라도 올릴 계획입니당 (짜잔

 

ㅣㅅㅇ

늘 부족한 블로그라고 말하는 것도 이제 습관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 정도로 부족함 많은 블로그입니다.

혼자 놀려고 만들었던 티스토리였는데 어느새 작지만, 느리지만 확실히 소통하는 장이 되어 있더라구요.

(거의 그 느림은 제 덕분입니다ㅋㅋㅋㅋㅋ 덧글을 진짜 넘나 늦게 달아욬ㅋㅋㅋㅋ 두세달 전 덧글이며 방명록 답글을 오늘서 달았슴미다^^)

방문해주시고, 제 혼잣말에 반응해주시는 덕후분들 덕분입니다ㅠㅜㅜ 하.. 마쟈.. 덕후는 이러케 상냥해써.. 내가 잊고 있어따...

 

방명록도 덧글도 늘 감사합니다.

덕질만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현실세계 다 주거쓰면..ㅜㅜ

쇼류요코만 영원했으면 좋겠다 <<ㅇㄱㄹㅇ ㅂㅂㅂㄱ

 

 

((이 아래는 원래 더보기 글로 줄였었는데 모바일에서 안열려서 그냥 풀어놓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 있었던 십이국기 배포전, 적유년의 식에 가서 탈탈 털렸습니다^^....
제 지갑과 하트가 식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느낌..★
참고로 동생이랑 같이 다녀왔었는데 동생 의문의 1패ㅋㅋㅋ 동생도 어느새 같이 털렸습니다ㅋㅋㅋㅋㅋ 하.. 덕후의 쇼핑이란 이런 거야..

전 사람멀미 너무 심해서 몇년 전부터 코믹 등의 동인행사는 전혀 가본 적이 없는데 제 본진의 행사라면 얘기가 달라서..^^...
그리고 십이국기 자체가 워낙 마이너한 느낌이고, 참관객 조사도 그렇게 몰리는 느낌이 아니라 더 용기를 냈는데
솔직히 제가 일반 입장 시간에서 조금 늦게 찾아간 것도 이유겠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고 한산한 분위기라 저한테는 정말 좋았어요ㅜㅜb
부스도 얼마 없었는데 그 와중에 다들 너무 금손이시라.. 
제가 이번달에 공구 좀 작작 참여했다면 부스를 다 쓸고 나왔을 텐데 그걸 못해서 넘나 아쉬워요...
더욱이 중간에 있는 저 책!!!!!! 쇼류요코가 있는 저 책!!!!!!!!!!! 하... 내 본진, 내 마음의 고향.. 절대 없을 줄 알았는데ㅠㅠㅠㅠ
감동해서 두권 질렀어욬ㅋㅋㅋㅋ 내가 원래 소장본을 따로 지르는 덕후가 아닌데.. 이건 그 이상의 기쁨이라...
심지어 열람하면서 아, 내가 왜 두권만 샀을까 겁나 탄식했슴미다... 근데 정작 난 단 한 푼도 남겨서 돌아오지 못해찌...

여튼 이런 식이라면 한번 더, 아니 여러번 더 휘말리고 싶네요ㅠㅠㅠㅠ 다음 식은 또 언제 일어나나요ㅠㅠㅠㅠㅠ 넘나 행복해따.. 넘나 행복해써...
지금도 제 침대 가를 떠나지를 못해요, 쟤들ㅋㅋㅋ큐ㅠㅠㅠㅠ 내 손 닿는 곳에 있으렴..8ㅁ8)♡

방명록이며 덧글을 확인은 하는데
어플로는 답을 하기 굉장히 불편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ㅜㅜ
방문 흔적은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머잖아 답 드릴게요! 진짜!!
그리고 적유년의 식에 휘말렸다 돌아오니
간만에 또 쇼류요코 욕구가 충만해져서
다시 끄적여볼까 싶습니다ㅋㅋㅋㅋ 행복해요ㅜㅜ
저 갑니다^.^ㅎㅎ
이게 몇년만의 동인행산지ㅋㅋㅋㅋ
최소 5년 이상 된 것 같네요... 대박ㅋㅋ
원래 사람 많은 자리는 체력도 안좋고 사람 멀미도 심해서 피했지만 제 본진의 행사라면 얘기가 다르죠.^▽^!!!ㅋㅋㅋㅋㅋㅋ
슬쩍 가서 구경 열심히 하고 오겠읍니당^.^#
물론 내 최애인 쇼류요코는 없겟지..ㅎ..ㅎㅎㅜㅜ
만약 오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때 뵈어용♥




  이 세계에 바다는 두 개 있어 그것이 하늘과 땅을 가르고 사람의 존귀를 나눈다. 땅의 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진 텅 빈 바다를 넘어 이 땅에 당도한 손님에게 있어 전혀 낯설 것 없는 성질의 것이었으나 땅 위에 사는 이들이 구름의 바다라 칭하는 하늘 역시 또 다른 바다였다. 그리고 그 바다를 넘어 더 위로 오르면 놀라운 세계가 펼쳐졌다.

  운해의 위는 꽉 막힌 것처럼 흐름이라 이를 만한 것이 거의 죽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할 때와 같은 감동과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은 불편한 이질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며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다는 반증이다. 요코는 그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구름 위 바다의 주민이며 또한 주인이었다.

  요코는 저를 감싼 기류를 느끼며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텁텁하고 정적인 공기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물장난을 치는 어린 아이의 소매를 몰래 적시듯 계절의 변화는 하계의 모습을 구름 위로 빨아올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가라앉은 기류에 열기는 상당히 빠져 있었다. 덥고 습한 기가 조금씩 건조하게 식어가며 머릿속을 차곡차곡 누른 열기며 건기를 내어놓고 있었다. 그녀는 새삼 제 양팔을 끌어안듯 붙잡고 속으로 되뇌었다. 가을인가.

  올해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 요천산 아래 잠시 내려갔다 온 것을 제하면 계절 하나를 넘기도록 하계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자잘한 일들이 뭐 이리 많은지. 하지만 그렇게 몰아친 덕분인지 오히려 바쁠 즈음인 지금은 놀러 나와 있다. 힘들어 죽겠다 불평할 때쯤 되면 관리들은 이렇게 한 번씩은 그녀를 풀어준다. 그것에 고마워하는 것을 보면 저 역시 조금씩 그들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신료들에게 길드는 왕이라니 어딘가 이상할 지도 모를 표현이다. 그 생각에 김빠진 웃음이 났다. 그런데 그 순간 시원한 듯 온기를 머금은 바람이 뒤에서 측면으로 밀어내며 비껴나가듯 힘 있게 스쳤다. 요코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다.


  “……오시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


  어느 틈에 곁에 당도한 것인지. 묻는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진중한 음색을 타고났지만 그 무게를 잊게 할 만큼 명랑하고 쾌활하다. 그 사이 사내가 일으킨 바람은 그녀에게 기척을 내듯 어깨를 밀고 그 위로 녹아내렸다. 더 깊이 눌러 지우듯 어깨 위를 반대편 손으로 잠시 감쌌다 놓으며 그녀는 대꾸했다.


  “이 시기면 바쁠 때잖아요.”


  사실 하계를 통 내려가 보지를 못하니 바쁠 때인 줄도 몰랐지만, 하는 사족은 굳이 달지 않는다. 그며 그녀며 모르지는 않을 이야기니 굳이 첨언할 필요는 없다. 쇼류는 옆으로 이어지는 난간에 기대듯 엉덩이를 붙이고 느슨히 앉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한참 구경하던 것에 힐끗 시선을 주고 다시 돌아보았다.


  “운이 좋았거나.”

  “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마음이 맞은 것이겠지.”


  끝까지 모호하게 에두르는 답들뿐이다. 그런 식의 말투는 그를 알기 어렵게 하는 특징 중 하나였다. 그런 듯 아닌 듯 모호하게 줄을 타는 느낌. 분명하지 않은 것은 싫다며 대놓고 투정을 부려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가 모호하게 구는 것은 늘 사적으로 단둘이 있을 때,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질문에 대해 답할 때뿐이었다. 혹은 굉장히 드물지만 연왕 스스로조차 확신이 어려울 때 정도일까. 그리고 방금 전 대화는 반드시 진위를 가려야 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안부 인사 같은 것이었다. 제가 생각했던 이유에 대해 그는 그리 궁금한 눈치도 아니었고 오히려 같이 스무고개를 하자는 듯 운이니 마음이니 하는 농이나 걸고 있었다. 말꼬리를 붙잡히면 꽤나 피곤할 텐데. 거기까지 이른 생각이 그의 말장난을 그러려니 넘어가기로 한다. 실은 그가 끝내 숨기더라도 제가 궁금해 할 여지는 없었다. 유리창 너머를 들여다보듯 훤히 보였다. 그에게는 유능한 신하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맡기고 슬쩍 도망한 것일 테지. 아마 내일 아침쯤 되면 뒤늦게 출궁을 눈치 챈 측근들이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와 저는 이리 관들 몰래 한해에 두어 번은 만나는 편이었다.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고 서로 이에 대해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아니라 엇갈릴 법도 하건만 한 번도 엇갈린 적이 없다. 저도 저지만 그도 그다. 어쩌면 엇갈린 것에 대해 제게 말하지 않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국경을 맞대고 이웃하고 있다 해도 왕과 왕의 만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다. 그렇다면 그와 저의 잦은 만남은 다른 이들이 보았을 때 꽤나 신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비공식적으로, 그 중에서도 관들 몰래 단둘이 만나는 것만 한해에 두어 번인 것이니 이래저래 핑계 붙인 만남이며 공식적인 내방을 합한다면 아무래도 꽤 잦다. 애초에 그런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요천에서 사귄 친구들보다 그가 더 익숙하고 친근하다면 역시 그건 문제가 맞기는 하겠지.


  “허리춤에 그건 또 뭐예요?”

  “이 좋은 보름날 밤에 술이 없으면 아쉽지 않겠어?”


  쇼류는 장난기 한껏 머금은 개구쟁이 아이 같은 웃음과 함께 허리춤의 술병의 목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여봐란 듯 가볍게 흔들어보였다. 운해의 잔잔한 파도소리에 묻히는 듯 이지러지는 듯 병속의 작은 파도는 저를 괴롭히는 이를 향해 요란하게 칭얼거린다. 분명 운해를 타고 건너왔다 여겼는데 현영궁에서 가져왔을까. 그런 것치고는 병의 모양이 지나치게 수수하다. 아무 무늬도 없고 모양도 균형이 맞지 않아 표면도 매끈하지 못한 데다 병을 빚고 굽는 과정에 기포까지 생긴 것인지 달빛에 희게 빛나는 둥근 몸체에는 작은 그림자가 고인 구멍마저 보였다. 그뿐인가. 자세히 보자니 여기저기 자잘한 실금까지 가있다. 구름 아래서도 자그마한 객잔에서나 몇 푼주면 쉬이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야말로 술을 담기 위한 목적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였다.


  “알겠으니 흔들지 말아요. 그렇게 마구 흔들면 맛이며 향이며 전부 날아가 버린다 하지 않았어요?”


  두 손을 얕게 들어 진정시키듯 허공을 가볍게 도닥이자 그는 손목을 이용해 가볍게 원을 그리다 마개를 빼고 병 주둥이를 입에 가져가 기울인다. 그리고는 시원스레 벌컥벌컥 들이켰다. 갈증 끝에 목을 축이는 것처럼 달게 삼킬 때마다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음식 중 제게 있어 제일 맛없는 것을 대라면 바로 저것인데, 저 모습을 보자니 참 신기하기도 하다. 그는 표정하나 찌푸리지 않고 즐기듯 꿀꺽꿀꺽 삼켰다. 요코는 그것을 빤히 쳐다보다 뒤늦게 시선을 거두었다. 계속 쳐다보고 있자니 괜히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쁜 짓을 한 것 같이 가슴이 꽉 죄는 기분이 들어 영 낯설었다. 유래한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역시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때 쇼류가 병을 다시 두어 번 둥글게 흔들고는 불쑥 제게 내밀었다.


  “?”

  “마셔.”


  요코는 잠시 당혹스러운 채 그것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국가적인 행사나 국빈 접대 같이 피할 수 없는 자리가 아닌 이상은 술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제가 술을 잘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것을 가져와 마침 생각났다는 듯 건네는 의도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그녀는 어깨를 약간 움츠렸다. 방금 입 대고 마시지 않으셨던가.


  “마시기 싫으면 관두고.”

  “, 아니에요.”


  아차. 요코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제지한 저를 원망했다. 술은 별로 마시고 싶지 않다. 더욱이 그의 입이 머물렀던 그 자리에 똑같은 것을 대는 것도 조금 껄끄럽다. 그가 닿아서 더럽다거나 불결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저 괜히 창피하고 부끄럽고 꺼려졌다. 그리고 그게 저 혼자만 느끼는 유치한 마음임을 알아 티내고 싶지 않았다. 분명 사춘기 소녀라 이를 나이는 이미 오래 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에 멈춰버린 몸 때문인지 아직도 이렇게 유치한 생각에 간간히 휘둘리기도 했다. 요코는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 병을 건네받았다. 어떻게 하지. 뒤늦게 후회가 몰아치며 한숨이 난다. 그렇다 해도 지금 와서 피하는 것은 더욱이 여의치 않았다. 제 입으로 거두는 병을 붙잡았으니 지금 와서 어찌 철회한단 말인가. 사실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고 중요한 사안도 아니니 번복하는 것 정도는 별일 아니라 생각하는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옥좌는 그렇잖아도 성실한 그녀에게 언행의 책임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내키지 않는 손으로 떨떠름하게 쇼류의 손에서 병을 건네받았다. 상당히 비운 것인지 생각보다 가벼운 병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요코는 속을 가늠하듯 잠시 병 주둥이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좁은 입구는 그 안에 채워진 것을 쉬이 보여주지 않았다. 밝은 한낮이어도 그럴 진데 날도 저물었으니 더욱이 보일 리는 없다. 요코는 티 나지 않을 만큼 작고 얕게 심호흡하고는 쇼류에게서 몸을 돌리고 병을 입가까지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입술에서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병을 띄워 얕은 한 모금을 목으로 기울였다.


  “…….”


  언제쯤이면 이 감각에 적응할 수 있을까. 요코는 입안을 훅 감싸고 식도로 잔상 같은 열기를 남기며 쓸고 내려가는 감각에 인상을 쓰며 한 차례 전율했다. 그리고는 입맛을 다시듯 작게 입술을 벌렸다. 그런데. 요코는 뒤늦게 놀란 눈을 깜빡였다. 되직하게 입 안에 조금 무겁게 남은 액체의 잔향은 조금 걸쭉한 질감을 입안에 남겨 고소한 와중에 달달했다. 시큼털털하긴 하지만 이건 마치. 그런데 그 모습을 쭉 지켜보고 있던 그가 소리 내어 웃고는 말했다.


  “술맛 모를 어린 애라 불릴 시기는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그 입맛은 용모 그대로군.”


  그리고는 요코의 두 손 안에 담긴 병을 빼앗듯 가져가 제 입으로 기울인다. 요코는 구수한 듯 알싸한 술맛에 잠시간 말도 잃은 채 잠자코 앉아있었다. 궁에서는 이런 것은 마셔본 적이 없다. 궁 밖에서는 술을 싫어하니 어지간하면 알아서 피했다. 그러니 서민들이나 마시는 이런 탁한 곡주는 그녀에게 있어 처음 맛보는 음료였다. 목을 넘어가는 느낌도 부담스럽지 않고 입 안으로 되직하게 남아 혀를 휘감는 맛은 고소하고 부드럽고 무겁지만 동시에 시큼털털하며 달달했다. 얼마 못 마셔 금세 배부를 것 같은 무게감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왜 이런 것은 한 번도 궁에 올라오지 못했을까. 요코는 여운을 느끼듯 잠시 입맛을 다시며 입에 남은 잔향을 맛보았다. 그러다 뒤늦게 그의 말이 생각에 미쳤다. 또또 어린애 취급. 요코는 막 입술 위로 기울이려는 그의 손에서 병을 빼앗았다. 입술은 처음 맛보는 생소한 술에, 뾰족한 눈매는 오기에 젖어 있었다. 쇼류는 뜬금없이 술병을 뺏겨 민망한 손을 제 다리 위로 얼떨떨하게 내려놓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 참, 내기를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크게 무시하며 아이 취급을 한 것도 아닌데 굳이 저렇게 고집을 부릴 것까지야. 오히려 그런 모습이야말로 더 어린 아이 같다. 그는 보란 듯이 술병에 입술을 꼭 붙이고 연달아 크게 몇 모금 들이키는 그녀의 옆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비식 웃음지어 버렸다. 크게 젖혀진 고개가 제 자리를 찾고 병이 입술에서 떨어질 때쯤 그녀의 눈은 이미 절반이 풀려 있었다. 그것은 둔하고 느릿하게 끔뻑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래도 내가 어린앤가요. 그리 묻는 시선은 분명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며 화내는 의사를 담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크게 끄덕이며 수긍하게끔 했다. 하지만 그리 했다가는 아마 고주망태가 된 저 소저의 고집에 휘둘려 내내 치다꺼리하다 금파궁까지 모셔다놓게 생겼으니 참을 밖에. 그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은 채 간신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렇다고 거짓으로 아니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 회피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나저나 이곳도 참 많이 변했군. 그는 요코의 시선이 저를 뚫을 테면 뚫어봐라 하는 마음으로 무시하며 운해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경국 최북단에 위치한 정주. 그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능운산은 임금의 사유지였다. 몇 대 전 경왕이 여름마다 사용하고는 하던 피서 용도의 별궁이었다고는 하나 굳이 운해 위에서는 피서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감안했을 때 그저 사치와 향락에 목적이 있었음은 불문가지다. 요코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텅 비고 을씨년스러운 이곳에서 사치스러운 장식이며 구조물들을 팔거나 국고로 환수한 뒤 간단하게 수리했다. 그리고는 사람을 모두 물리치고 가끔씩 저 혼자 들르고는 했다. 측근들에게조차 말하지 않았으니 가끔 제가 금파궁을 비울 때마다 이런 곳에 있기도 하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터다. 케이키야 기린이라 기척을 읽을 테니 언제든 제 뒤를 밟을 수 있겠지만 그는 요코를 배려하는 것인지 한 번도 그 그림자조차 밟은 일이 없었다. 물론 그녀가 필요 이상으로 수상하게 군다면 그때는 또 모르겠지만.

  요코는 멍하니 운해를 내려다보았다. 하계의 가을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 이맘때쯤이면.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을 억지로 기억해내려 노력하니 저절로 미간이 움츠러든다. 게다가 마치 명화의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희한한 광경을 내려다보니 금방이라도 빨려들 듯 앞으로 고꾸라질 듯 어질어질하다. 아무래도 몇 모금 급하게 들이킨 술이 꽤나 혁혁한 공을 세우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혀끝으로 입안을 더듬듯 잔향을 훑다 쇼류의 손아귀에서 병을 빼앗아들었다. 생각보다 자꾸 한모금만 더, 하는 식욕을 자극하는 맛이라 저도 모르게 조급한 욕심을 내게 되었다. 그런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누군가의 조언도 들은 것 같기는 하지만 요코는 단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무거운 충고라도 한없이 가벼워질 밖에. 그녀는 마음만 앞세워 병을 크게 기울였다.


  “잠깐만, 요코.”


  말리는 목소리도 들린 것 같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들린 것 같다는 느낌뿐이라 슬쩍 무시하기로 한다. 부담스럽게 가슴이 부대끼는 것도 아니니 취한 것은 아닐 거라 자부했다. 기분은 구름 위를 사뿐사뿐, 안개 속을 산책하듯 아슬아슬.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이 느낌이 떠날 것이 벌써부터 무서워질 정도다. 마음이 앞선 손이 결국 입술을 제치고 저만치 기울어버린다. 그와 동시에 차가운 기운이 순식간에 가슴으로 스몄다.


  “,”


  둔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바로하자 뒤늦게 술이 목을 타고 흘러내린 감각이 한 꺼풀 너머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옆에서는 핀잔하는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


  “누가 술을 그렇게 급하게 마시나?”


  무안을 주는 목소리가 얄미운 말투와는 달리 다정한 손길로 제 목덜미를 더듬었다. 대충 그어내듯 무뚝뚝한 손길은 의외의 섬세함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닦아내주고 얄짤없이 술병을 빼앗았다. 요코는 멍하니 뜬 눈을 끔뻑이다 그의 손이 떠나갈 쯤에서야 목을 확 움츠렸다. 커다란 손길은 의외로 따뜻해 도리어 한기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가슴으로 스민 술의 감각을 몇 배는 증폭시켜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무심한 그 손길이 저를 얼마나 당혹시키는지 어째서 저 분은 모르실까. 존중해주어야 할 여자로는 전혀 보지 않으심이다. 요코는 자라목을 한 채 붉어진 얼굴로 그의 눈치를 보았다. 결국 또 어린애 취급이다.


  “당신 취했어.”

  “아니에요.”

  “취한 사람이 자기 취했다 하는 것 보았나?”

  “난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으니 확실히 아니에요.”

  “, .”


  쇼류는 어이가 없다는 듯 기가 찬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을 내었다.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다? 과하게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는 뜻일 리는 없다. 몇 모금 마셨다고 저리 눈이 절반은 풀린 것을. 그러니 이 여자는 단 한 번도 술을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제 주량도 모르겠지. 이리 금방 취하는 것을 보면 주량은 꽤나 적은 듯싶은데 그조차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은. 쇼류는 가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국가의 행사는 크고 작은 것을 불문하고 헤아려보면 역시 적지 않다. 술을 나누는 것 역시 필수라 그녀가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저렇게나 얕은 제 주량을 모르는 것은 이상하다. 누군가 그녀의 절주를 은밀히 도왔다면. 그는 마침내 가 닿은 생각에 한기를 느꼈다. 측근들이 걸러냈던 것을 제가 잔뜩 먹여놓은 셈인 것이다.


  “여하튼, 그만 마시는 게 좋겠어.”

  “마시라면서요.”

  “마시기 싫으면 관두라고도 했지.”

  “싫지 않아요.”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 저 저 쇠심줄 고집. 그는 요코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니 그녀는 질 수 없다는 듯 마주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두 사람 사이에 시선이 오갔을까. 그는 졌다는 듯 다시 병을 내어놓았다. 어차피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몇 모금 더 마신다 해서 더 극적인 것을 보지는 않으리라. 다만 저대로 궁에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 잠자리를 보아놓는 것이 좋을 터다. 책임이라 하긴 뭣하지만 무리해서 마시는 것을 방치했으니 저도 오늘은 여기서 머무는 수밖에. 그는 한숨과 함께 그녀가 다시 병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야금야금 삼키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따지 않았던 새로운 병을 들어 그것을 훅 들이켰다.


  “? 쇼류?”

  그는 한참 달게 병을 들이키다 말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사적인 자리 둘만 있을 때는 이름을 부르라 권해도 그럴 순 없다며 거듭 거절하더니만 방금 전은 조르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불러준다. 그는 뒤늦게 얼떨떨해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요코의 묘하게 풀어진 눈은 그를 흐릿하게 담고 느릿느릿 깜빡였다.


  “또 있었어요?”


  무엇이. 잠시 멍한 와중에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정확히 타고 올라오니 그것은 제 얼굴이 아니라 제 손에 고여 있었다. 그제서 그녀가 말한 것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싫다 할 때는 언제고 저렇게 욕심 많은 눈을 하고 서운하다는 양 쳐다보는 모습이라니. 그는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또 있었으면 하나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할 게 아니라 진작 나누어 마셨으면 됐잖아요.”


  심지어는 억울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더 우습다. 언제 제게 술 한 병이라도 맡겨놓았던 것인지. 그는 웃음을 간신히 내리눌렀다.


  “네가 그리 잘 마실 줄은 몰라서 맛만 보여주려 했지.”


  대꾸하기 어렵게 하는 그 답변에 요코는 못마땅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제 손에 들린 병을 보다 불현 듯 그의 앞으로 쭉 뻗어 내밀었다. 그는 의미를 짐작하듯 잠시 그것을 빤히 내려다보다 뒤늦게 이해했다는 듯 제 병을 들어 병 주둥이끼리 가벼운 소리가 나도록 맞부딪쳤다. 그러자 그제서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한 그녀가 다시 병을 가져갔다. 그는 비식 웃고는 그녀의 곁에 앉았다.


  “으응, 좁아요.”


  거절하려고 내는 짜증 섞인 칭얼거림마저 어딘가 애교가 섞여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는 저도 모르게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터지는 웃음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나름 필사적이었다. 간신히 헛기침으로 무마하고는 기어코 엉덩이를 들여 좁은 의자에 끼어 앉는다. 두 사람이 앉기에는 조금 좁은 듯한 의자는 요코의 몸이 가늘어서인지 간신히 두 사람을 수용해주었다. 그는 어깨 때문에 자리가 더 좁다 느끼는 순간 요코와 닿아있는 제 한쪽 어깨를 의자 등받이로 넘겨 걸쳐놓았다. 꽤나 바짝 접촉해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술기운이 그 위화감도 둔하게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혹은 띄워 날리는 것만 같았다. 그와 그녀는 다시 한 번 병의 주둥이를 서로 마주하고는 낄낄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오래간 깔려있던 침묵을 깨고 먼저 말문을 튼 것은 요코 쪽이었다.


  “그러고 보니 봉래는 아마 이맘때쯤 오봉 아니었던가요?”


  쇼류는 잠시 먼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건네는 말 중 특정한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생소한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생각을 포기하고 곧장 다시 되물었다.


  “오봉?”

  “쇼류 때는 없었나요? 조상의 혼을 맞이했다 다시 보내는 큰 명절 같은 거 있잖아요.”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오래된 기억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저었다.


  “글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예전이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말이나 못하면.”


  얄밉다는 듯 비아냥대는 그녀의 입술을 엄지와 검지로 붙잡자 그녀가 작게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다지 미운 소리도 아니었던 지라 같이 웃으니 그녀는 크게 기우뚱기우뚱 흔들리는 고개로 마치 리듬을 타듯 비교적 비슷한 박자로 알 수 없는 음조를 흥얼거리다 말했다.


  “사실 나부터도 기억이 잘 안나요. 명절이라 해서 명절 기분을 제대로 냈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더 흐릿하고.”


  옆에서 까딱까딱 흔들리는 고개가 볼 성 사나워 제 어깨에 억지로 기대게 하니 파드득 놀라 다시 고개를 세웠다가 다시 억지로 누르는 손길에 꾹 눌려 이번에야말로 얌전히 가라앉았다. 그는 제 어깨에 폭 기댄 그녀가 품으로 기우는 것을 느끼며 제 팔로 편안하게 그녀를 감쌌다. 이제야 좀 한 결 낫다.


  “, 섬 몇 개 붙여놓은 섬마을에 살다 보니 풍어제 같은 건 종종 지냈던 것 같기도 하다만.”


  그래요? 하고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과 시선을 맞추고 아마도, 하는 불분명한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여주니 음, 하고 또 저만의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동그랗게 뜬 눈으로 운해를 쳐다보며 말했다.


  “, 그러고 보니 상세는 이맘때쯤 수확제 같은 걸 하더라고요.”

  “아아, 그렇지.”

  “그런데 그것도 이 세계에 오고 몇 년이나 지나서 알았어요. 즉위 초는 작물 수확량도 좋지 않아서 그런 거 하지도 않았으니까.”

  “나도 한 즉위 초 십여 년은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을 걸?”

  “그래요? 정말 그렇게 오래?”

  “잊었나? 절산의 황폐.”


  아아. 요코는 쇼류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의심하듯 그를 올려다보다 이내 납득하며 그의 품으로 찾아들었다. 쇼류는 그녀를 품으며 크게 하품했다. 간만에 마시니 좀 취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곡주라는 게 모르는 사이에 훅 취해버리는 지라 정신을 놓고 있으면 요코 꼴 나게 십상인데 저도 오늘은 경계가 부족했던 것이리라. 그는 저 스스로를 달래려는 양 그녀의 팔을 둘러 안고 부드럽게 도닥였다. 그러자 팔 안의 그녀가 거의 녹아내리듯 완전히 긴장을 풀어버렸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왜 이쪽세계는 조상의 혼을 기리거나 하는 행사는 없나 했는데,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여기는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 끝이라 여긴다는 거. 자손들을 돌본다거나 그런 거 없이.”

  “그러고 보니 나도 죽어보지 않아서 확답할 수는 없지만 그런 얘기가 있더군. 봉산에는 코우리라는 곳이 있어 죽은 사람의 혼은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그걸로 끝인 걸 테지.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조상신으로서 신격화하지는 않아. , 당신이나 나도 신 나부랭이쯤은 되니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죽어서 신이 된다는 개념이 왕을 능멸하게 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게 뭐예요.”


  요코는 웃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떨었다. 그렇게 우스운 얘기였나 싶어 잠시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던 그도 다시 곰씹어보니 꽤나 우스운 말이었다고 생각되었는지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그것이 잦아들 때쯤 요코가 그의 말꼬리를 이어 말했다.


  “그마저도 전설일 뿐이고 이야깃거리일 뿐이지 실제로 죽은 사람의 혼의 존재를 믿고 빌거나 감사를 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거군요.”

  “그런 거겠지.”


  요코는 그의 말을 듣고 한동안을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크게 심호흡했다. 그는 품안의 자그마한 인형이 부풀었다 작아지는 것을 느끼며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캐묻지 않아도 그녀는 머잖아 답해줄 터였다. 역시나. 이윽고 그녀는 말했다.


  “있죠, 쇼류. 그게 난 처음에는 굉장히 차갑고 냉정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래오래 함께할 줄 알았던 사람이 어느 날 한순간에 떠나버렸는데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납득해버리는 게 굉장히 낯설어보였고요.”


  쇼류는 얌전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오히려 참 기분 좋게 여겨져요. 신기하죠?”


  그는 더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곧바로 답했다.


  “그건 당신이 점점 왕이 되어가기 때문인 것 아니겠어?”

  “?”

  “왕은 산 사람을 위한 자다. 그러니 산 자들의 즐거움을 보고 듣는 것이 당연히 더 즐겁지 않겠어?”


  요코는 멀뚱멀뚱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답답하다는 양 다시 입을 열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제 공이며 즐거움의 몫을 엄한 데 나누어 돌리지 않고 오롯이 제 기쁨으로 삼는다. 그게 어찌 보기 좋지 않겠나.”


  요코는 가만히 제 술병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건 꿈보다 해몽인 것 같아요.”


  그리고는 가볍게 병을 흔들어보다 그의 손에서 병을 빼앗아 그 손에는 제 병을 쥐어주었다. 텅 비어있는 느낌이 손바닥 안으로 감겨오는 것이 아무래도 이미 한 병을 완전히 동낸 듯싶었다. 그녀는 그의 병을 입가로 가져가 가볍게 홀짝였다. 정말 신기하기도 하다. 원래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처음 먹어보는 되직하게 시큼털털하고 달달한 액체는 자꾸 제 입술을 끌어당겼다. 소박한 정취는 부담스럽게 정갈하고 화려한 향취보다 더 다정했고 또 맛있게 느껴졌다. 그는 빈 병을 제 입으로 기울였다가 역시나 텅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거 정주에서 난 곡주야.”

  “정말요?”

  “작년에 대풍이 들어서 그때 담가 잘 숙성된 놈들은 그렇게 맛도 좋지. 가끔 생각날 때는 일부러 여기까지 내려오기도 할 정도야.”


  요코는 새삼 놀란 눈으로 제 손 안의 병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멀리 시선을 떨어뜨려 운해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봉래에 있을 적 미술책에서나 봤던 유명화가의 밤하늘처럼 운해는 흐르며 뭉치고 반짝이며 터져 넘치는 빛의 무리들로 가득하다. 저 아래는 한참 흥겨운 수확제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를 터다. 바닷물로 가려진 풍악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요코는 배시시 웃으며 그의 어깨로 머리를 기대었다. 어질어질. 기분 좋은 취기가 설렘과 함께 넘치는 즐거움으로 그녀를 흔들었다.


  “좋네요.”

  “?”


  그는 뜬금없는 요코의 말에 의아함을 표하듯 잠시 시선을 두다 되물었다. 그러자 요코는 눈을 감고 어지럼증을 즐기듯 가느다란 호흡을 들이켜고 내쉬며 웃음 지었다.


  “이맘때 운해는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맛까지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러니까 좋지 않겠어요?”


  쇼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에서 가볍게 병을 낚아채 쭉 들이키고는 답했다.


  “과연 그렇군.”


마침





원래는 지지난주? 주말 쯤에 귀환 하편이 올라왔었어야 했지만 이게 아무리 봐도 그대로 올릴 만큼이 못되는데 수정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더라구요

아예 다시 써야 하나 싶을 정돈데 이걸 어떻게 다시 써야 하나도 가늠을 못하겠곸ㅋㅋㅋㅋ 

더욱이 요즘 직장에서 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고 가족 행사까지 갑자기 겹치고

그런 상황에서 시간마저 여의치 않아 말도 없이 늦었습니다. 역시 저는 호언장담은 하지 않는 걸로..^.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ㅜㅜ


덕분에 귀환 하편은 좀 미뤄져야 할 것 같고(만약 정말 어찌 해도 손 쓸 새가 없다면 그냥.. 네...)

비축해놓은 글은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예전에 스터디로 급하게 뽑아올린 게 하나 있어서ㅋㅋㅋ

물론 당시 주제는 명절? 추석? 그랬기 때문에 때 소재가 지금 올릴 소재가 아니지만 이번달 내에 글이 아예 없는 것도 좀 그래서 그냥 올립니다.

지금 주변이 혼란스러워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네요ㅜㅜ 

수정할 것들은 전부 이따 밤에 수정하겠고, 일단은 올리겠습니다ㅠㅠㅠ